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 연재 1회
안녕하세요 성령님
김치훈목사 · 새부대교회
저는 처음부터 영적인 사역을 알고 있었던 사람이 아닙니다. 제가 자라 온 신앙의 배경은 장로교였고, 성령님에 관한 이야기를 거의 듣지 못했습니다. 그저 교회에 열심히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2학년 여름수련회에서 예수님을 극적으로 만났습니다. 환상 가운데 예수님을 만났는데, 그 이야기는 나중에 자세히 나누겠습니다. 그 이후로 주님의 사랑에 너무나 감격하여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내내 울었던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후반부터 약 1년 반 동안은 기도할 때마다 눈물이 났고, 하나님의 사랑이 제 안에 부어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당시 제 소원은 주님을 위해 죽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너무나 감격해서 그런 마음이 내 안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에 비하면 제 생명을 드리는 것조차 너무나 부족하고 작은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고등학교 3학년까지 기도만 하면 그 사랑에 감격하면서 울면서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저는 대학에 선교단체라는 기관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IVF라는 선교단체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경험한 IVF는 성령 사역을 중심으로 하는 선교단체가 아니었습니다. 대신 말씀 연구를 일찍부터 가르쳤습니다. 다른 선교단체에서는 간사들에게 가르치는 내용을 학생 리더들과 멤버들에게도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PBS, 곧 개인 성경 연구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2학년, 3학년, 4학년까지 계속 말씀을 연구하며 말씀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또한 소그룹 활동을 통해 많은 인격적인 훈련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상처를 직면하고, 자기 이야기를 나누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상처받은 후배들을 돌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기도하고 상담해 주는 사역은 나를 너무 지키게 했습니다. 더군다나 나도 내적인 상처가 많고, 내 스스로도 해결못한 문제들이 많았습니다. 또한 이런 사역을 언제까지 해야하는 것인지, 그들은 쉽게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잠시 위로받고, 좋아지는 것같았지만, 금새 똑같은 이유로 넘어지고 낙심했습니다. 그런 모습은 나에게 사역에 대한 회의감을 들게 했고, 낙심하게 하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나도 이렇게 힘든데, 너를 어떻게 돌볼 수 있겠니?’
이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결국 후배들을 피하기도 했습니다. 누군가 저를 불러도 대답하지 않았고,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도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저 자신도 견디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저도 힘들어 죽을 것 같은데, 후배들을 어떻게 돌봐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대학교 4학년 2학기, 마지막 수련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신학대학원에 합격해 놓은 상태였습니다.
그때까지도 저는 성령님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서도 “성령님을 어떻게 만나지?”, “성령님의 임재는 어떻게 경험하지?”라는 궁금증이 있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저 역시 직접 경험하기 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스스로 신앙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성령님을 실제적으로 만나는 그런 경험이 없었습니다.
마지막 수련회에는 IVF 출신으로 성령 사역을 하신다는 이춘태 간사님이 강사로 오셨습니다. 그분은 익산에서 IVF 사역을 하셨고, 성령님을 경험한 이후 성령 사역을 하게 되셨다고 들었습니다. 당시 제가 알기로는 IVF 안에서 그런 사역을 하시는 분이 많지 않았습니다. IVF는 초교파 선교단체였지만, 제가 경험한 신앙의 분위기는 장로교에 가까웠습니다. 방언이나 은사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성령 사역을 하시는 분이 오신다고 하니 처음에는 생소했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조금 두렵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사람을 보면 어떤 죄를 지었는지 모두 아신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당시는 은사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습니다.
‘나를 보시고 내가 지은 죄를 말씀하시면 어떻게 하지?’
아무것도 모르던 때라 정말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 뿐만 아니라 찬양팀으로 섬기는 모든 지체들이 다들 그런 걱정으로 생각나는 죄를 전부 회개했습니다. 모일 때마다 회개했습니다. 혹시 빠뜨린 것이 있을까 봐 계속 회개했습니다. 저는 찬양팀 싱어로 참석했는데, 회개하며 기도하느라 수련회에 가기도 전에 목이 쉬어 버렸습니다.
첫째 날, 강사님은 저희에게 익숙한 IVF 방식으로 말씀을 잘 전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녁 말씀을 마치신 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일부터 성령께서 오실 것입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여러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성령님이 오시는 것을 어떻게 아시지? 내일 오신다는 것은 어떻게 아시지? 그렇다면 오늘은 왜 오시지 않은 걸까?’
그렇게 궁금해하면서도 다음 날을 기다렸습니다. 성령님을 만나고 싶다는 사모함이 생겼습니다. 기억나는 것은 당시 수련회에는 회비를 내지 못한 학생들이 있어서 식비가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간사님들은 간식을 충분히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강사님은 괜찮으니 간식을 넉넉하게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제로 재정이 부족했던 것같습니다. 그래서 간식도 덜 주고, 식사도 안먹을 사람은 식권을 받지 말아달라고 광고도 하고 했는데 그 소식을 들은 강사님은 괜찮으니 간식도 넉넉히 주라고 권면하셨습니다. 재정이 부족하다는데 어떻게 하려고 그러시지?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 수련회를 마쳤을 때는 오히려 돈이 남았습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을 만나고 싶어 하는 많은 학생들이 금식을 했기 때문입니다. 먼저 성령님을 경험한 사람도 있었고, 아직 경험하지 못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자 아직 경험하지 못한 학생들이 더욱 사모하며 금식했습니다.
둘째 날 저녁이 되었습니다. 강사님은 성격이 매우 차분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분도 처음에는 성령 사역에 대해 거부감이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머리를 밀거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는 모습을 보고, 그런 사역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도 자신은 그런 일을 할 수 없다고 말씀드렸다고 하셨습니다. 그분의 간증에 따르면, 이후 약 3년 동안 병으로 누워 지내셨습니다. 그러다가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마음을 열었을 때 성령의 불이 임했고, 다시 일어나 사역하게 되셨다고 합니다. 그날 강사님은 설교를 마치신 뒤, 자신이 앞에서 방언으로 기도하면 성령께서 오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께서 오시면 우리가 아직 경험해 보지 않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으니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오히려 더 긴장되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기에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는 걸까?’
강사님은 앞에 서서 방언으로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들은 학생들은 앉아서 기다렸습니다. 어떤 사람은 눈을 감고 기다렸고, 어떤 사람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궁금해서 눈을 뜨고 바라보았습니다. 저도 찬양팀으로 앞에 서 있었기 때문에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공기가 묵직해지는 것 같았고, 무언가 내려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와 함께 앉아 있던 학생들이 울기 시작했습니다. 몸을 떨거나 넘어지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반면 옆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같은 자리에 있어도 사람마다 반응이 달랐습니다.
‘정말 오셨구나. 성령님이 오셨구나.’
그때 제 옆에 있던 한 자매가 갑자기 몸을 떨기 시작했습니다. 호흡도 거칠어졌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며 성령님이 오셨다고 생각했고, 부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나는 바로 옆에 있는데, 왜 나에게는 오시지 않을까?’ 당시 저는 성령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움직이면 안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곁눈질로 그 자매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매가 주저앉았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주님이 오셨는데 왜 주저앉았을까? 끝까지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저렇게 주저앉으면서 성령님이 역사가 일어나려고 하는데 뭔가 그것이 그친 것같았습니다. 그렇게 생각이 되니 저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에게 오십시오. 저는 주저앉지 않겠습니다. 저에게 오십시오.”
그렇게 속으로 기도하고 있었는데, 정말 제게도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호흡이 거칠어지고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특별히 무슨 생각을 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런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오셨구나. 성령님이 오셨구나.’ 그런데 몸이 뒤로 밀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순간 뒤를 돌아보니 피아노 의자의 모서리가 있었습니다. 제가 그대로 넘어지면 뒤통수를 부딪칠 것 같은 위치였습니다. ‘하필 왜 여기에 서 있었을까? 넘어지면 머리를 다칠 텐데, 어떻게 하지?’ 그렇게 고민하는데 한 가지 생각이 스쳤습니다. ‘성령님이 하시는 일이라면 다치지 않을 것이다.’
혈루증을 앓던 여인에게 “예수님의 옷자락만 붙잡아도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처럼, 제 마음에도 그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그 순간의 생각을 성령님이 주시는 감동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성령님께서도 믿음을 요구하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믿고 몸의 힘을 빼자 뒤로 넘어갔습니다. 순간 정신을 잃었습니다. 저는 머리를 부딪혀서 정신을 잃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정신이 깨어보니 강사님이 오셔서 제 목덜미를 받쳐 주셨습니다. 저는 그 일을 통해 생각했습니다. ‘강사님이 잡아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면 쉽게 안심했을 텐데, 왜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을까?’ 제게 일어난 일들은 모든 과정을 미리 설명해 주는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믿음으로 반응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 성령님께서 무엇인가 알려 주실 때에도 우리의 믿음을 요구하실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강사님이 저를 받쳐 주셔서 머리를 부딪치지 않았고, 저는 잠시 앉아 있었습니다. 정신이 조금 몽롱한 상태에서 강사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앞에 가서 누워서 기도하세요.”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누워서 기도해도 되는 것이었으면 진작 말씀해 주시지.’ 그때까지 저는 자리를 옮기거나 앉으면 성령님이 더 이상 임하시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앞에 가서 앉아 기도하자 다시 강하게 임재를 느꼈습니다. 마치 제 몸 전체를 덮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누워 있는데 성령님이 온몸을 덮고 운행하시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바람 같은 기운도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성령님이세요?” 그때 아주 부드러운 “음~”이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주변에서는 학생들이 성령안에서 쓰러지고, 울고, 성령님의 만나는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저는 다시 물었습니다. “이것도 성령님이 하시는 일이세요?” 다시 “응” 이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음성은 소리를 들었다는 것이 아니라, 제 마음에 너무나 분명하게 내적인 음성처럼 알아졌습니다. 저는 그렇게 두 번의 짧은 응답을 들었습니다. 그 음성이 제 온몸에 울려 퍼지는 듯했습니다. 더 이상 궁금하지 않았습니다. 성령님이시고, 성령님이 하시는 일이구나 하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러고는 발부터 진동이 오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제가 일부러 몸을 떠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허벅지와 배, 가슴까지 떨렸고, 눈물이 났습니다. 마치 온몸을 수술하시고 온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주시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가 지난 것 같습니다.
집회가 끝난 뒤에는 리더들이 모여 회의를 했습니다. 그런데 리더들의 관심은 수련회 운영보다 그날 일어난 일에 있었습니다. 성령님을 경험한 리더와 아직 경험하지 못한 리더가 나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쓰러질 때 키보드 쪽으로 몸이 기울면서 반주가 멈췄습니다. 그래서 많은 학생이 제게 일어난 일을 보았습니다. 리더들이 모이자 후배들이 물었습니다.
“형,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어요?” 한 후배는 제가 호흡하던 모습부터 뒤로 넘어지려던 순간, 강사님이 내려와 받쳐 주신 일까지 모두 지켜보았다고 했습니다. 제가 누워 있을 때 몸이 떨리고 울던 모습도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 후배는 너무 궁금해서 계속 관찰하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자기는 기도하지 않고 말이죠. 관찰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 일을 보고 마음이 열린 학생들이 다음 날부터 금식하기 시작했습니다. 강사님이 밥을 먹어도 된다고 하셔도, 자신은 주님을 만나야 한다며 기도하는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집회 현장에 성령님께서 머물러 계시는 것같았습니다. 그 예배당 뿐만 아니라, 그 수련원 전체에 보이지 않는 구름이 덮여있듯이 성령께서 운행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다음 날 오전 집회가 끝난 뒤에도 식사하지 않고 기도하던 한 후배는 갑자기 크게 웃기 시작했습니다. 혼자 웃으며 구르기도 했고, 웃음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저는 무슨 일인지 물었고, 그 후배는 성령께서 웃게 하시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성령안에서 웃는다고 하더니. 이런 것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밖으로 나와 걷고 있는데, 한 자매가 뛰어다니며 저를 불렀습니다. 평소에는 뛰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는 자매였습니다. 그런데 계속 뛰면서 멈출 수 없다고 했습니다. “오빠, 저 좀 잡아 주세요. 멈추지가 않아요.” 조금 뒤에 보니 그 자매가 멈춰 있었습니다. 왜 뛰었느냐고 물었더니, 자신이 너무 운동하지 않아서 성령님이 손을 잡고 함께 뛰어 주셨다고 했습니다. 제가 어떻게 멈추었느냐고 묻자, 그 자매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제 그만 뛰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멈췄어요.”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하나님이 참 인격적이실 뿐만 아니라, 너무 실제적이었습니다. 정말 보이지만 않았지. 옆에 계신 것처럼 우리와 교제하시고 우리와 만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인식을 못하는 것이지 성령께서 우리 안에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후 집회에서도 여러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그 강사님의 사역에서는 입신이나 환상을 경험하는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학생은 누운 채 수영하는 것처럼 움직였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하늘을 나는 환상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어떤 학생은 눈을 감고 매우 아름답게 춤을 추었습니다. 또 어떤 학생은 투박하지만 열정적으로 몸을 움직였습니다. 저는 사람마다 표현과 은사가 다르게 나타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겉으로는 매우 복잡해 보였지만, 움직이는 학생들이 서로 부딪치지 않고 피하는 모습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 안에 나름의 질서가 있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이것을 거룩한 무질서 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한편, 뒤쪽에 있던 한 자매가 맨손으로 유리창을 깨뜨리는 일도 있었습니다. 손에서 피가 났고,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 자매는 따로 데려가 사역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수련회에서는 말씀을 전한 뒤 여러 일이 일어났습니다. 처음에는 임재를 강하게 느끼며 넘어지던 학생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 기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점차 그 경험에 익숙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한 자매는 서서 기도하면서 계속 울었습니다. 왜 우느냐고 물었더니, 주님이 자신의 뺨을 만지시며 사랑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느꼈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지만, 그 자매는 주님의 손길을 실제적으로 느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 경험을 통해 상처가 많던 학생들이 회복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무리 사랑한다고 말해 주어도 받아들이지 못하던 학생들이 주님의 사랑을 경험하며 달라졌습니다. 어떤 학생은 주님이 사람들을 안아 주시고 귓속말하시는 모습을 보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 현장에서 많은 학생이 깊은 회복을 경험했습니다.
저는 둘째 날 저녁에 강한 경험을 했고, 이후 마지막 날을 맞았습니다. 처음에는 조별 순서에 따라 맨 앞에 앉았지만, 마지막 날에는 맨 뒤에 앉게 되었습니다. 기도 시간이 되자 강사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회개하십시오.” 저는 기도 인도자가 앞에서 하는 말을 잘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감동 가운데 전하는 말씀일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기도에만 몰두하여 그 말을 놓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그날도 회개하라는 말씀을 듣고 제 마음을 살폈습니다. ‘무엇을 회개해야 할까?’ 그러자 힘들어하던 후배들을 외면했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그 일을 회개했습니다.
“하나님, 후배들이 힘들어하는데도 만나 주지 못하고, 상담해 주지 못하고, 돌보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저도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들을 돌보고 싶었지만 제게 도울 힘이 없었습니다. 저를 도와주십시오. 제게 힘을 주셔서 그들을 도울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렇게 속으로 기도하는데 갑자기 양손에 어떤 느낌이 왔습니다. 손이 묵직해지고, 찌릿한 기운이 머무는 것 같았습니다. 트램펄린을 타고 내려왔을 때 다리가 묵직하게 느껴지는 것과 비슷했습니다. 그 느낌이 약 30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당시 저는 힘들어하던 멤버의 손을 잡고 있었는데, 나중에 그 멤버에게도 손에 그런 느낌이 있었는지 물었습니다. 그 멤버는 아무 느낌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제 손에만 그런 느낌이 있었던 것입니다. 집회가 끝난 뒤 강사님은 자신이 경험한 일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으면 와서 물어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마지막 때에는 시험과 연단이 많기 때문에 하나님을 실제적으로 만나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저는 양손에 있었던 일이 궁금해서 찾아가 물었습니다. “제 양손에 자석이나 자기장 같은 강한 힘이 오랫동안 머물렀습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그분은 제 얼굴을 보시더니, 아직 치유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당시 저는 상처가 많았고 표정도 어두웠습니다. 그분은 보통 손에 그런 경험이 오면 능력을 받는 경우가 있지만, 단순한 성령 체험일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돌아가서 기도해 보세요. 기도할 때 능력이 나타난다면 능력을 받은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체험한 것일 수 있습니다.” 저는 능력을 받은 것이기를 바랐습니다. ‘단순한 체험이라면 다른 곳에 느낌을 주실 수도 있었을 텐데, 왜 손에 주셨을까? 능력을 주신 것이 아닐까?’ 그런 기대를 품고 아주대학교 앞에 있던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이후 후배들이 아프다고 할 때마다 찾아가 기도해 주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하숙집에 살던 1학년 후배는 허벅지에 종기 같은 것이 생겨 병원에 가려고 했습니다. 그 후배는 영적인 사역에 어느 정도 익숙했고, 저를 신뢰했습니다. 또 자매들의 숙소에 잠깐 방문했는데, 여러 자매가 감기에 걸려 있었습니다. 약을 사러 가려고 하기에 저는 수련회에서 양손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기도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당시 저는 약을 먹지 말고 기도를 받아 보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저는 공동체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리더였고, 학생들에게 신뢰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매들은 제 말을 믿고 기도를 받았습니다. 돌이켜 보면 주님을 믿어야 했는데, 그때는 “오빠를 믿겠습니다”라고 했던 것같군요. 이후 제가 신학대학원에 다녀와 보니, 그 후배의 상태가 더 나빠져 있었습니다. 제 말을 믿고 일주일 동안 병원에 가지 않았는데, 너무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허벅지에 고름이 찼다고 했습니다. 자매들도 걱정되어 찾아가 보니 심하게 앓아누워 있었습니다. 아~ 기도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던 이들은 오히려 병이 악화되었습니다. 저는 그 일을 겪으며 혼란스러웠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성령 체험이었을까? 병을 낫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병을 키운 것 아닐까?’ 그래서 한동안 기도해 주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 안에 다시 질문이 생겼습니다. ‘단순한 체험이었다면 왜 손에 그런 느낌을 주셨을까? 이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기도를 더 해 보자.’ 당시 저는 지금의 아내와 교제하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허리와 어깨 등 여러 곳이 아팠고, 비염도 심했습니다. 함께 걷다가도 통증 때문에 쉬어야 할 때가 있었습니다. 아내가 기도해 달라고 할 때마다 저는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받고 나면 조금 괜찮아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다시 기대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아내가 사랑의 은사를 받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랑의 은사를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당시에는 저도 잘 알지 못했지만,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이후 신학대학원에 들어간 뒤 아내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아내가 사랑의 은사를 받은 것 같다고 하기에, 저는 확인해 보고 싶어서 방언으로 기도해 보라고 했습니다. 저 역시 잘 모르면서 방언 통역을 시도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방언 가운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잠깐이나마 방언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 같은 경험도 했습니다. “사랑의 은사를 받은 것 같아요.” 제가 그렇게 말하자, 아내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불같이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일을 통해 생각했습니다. ‘이런 일도 일어나는구나. 무엇인가 받은 것은 맞는 것 같구나.’ 그때부터 영적인 사역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습니다. ‘귀신도 쫓아낼 수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그런 궁금증을 가지고 관련된 책을 읽었습니다. 그 책은 오랫동안 사역한 사람이 자신의 경험을 정리한 책이었고, 귀신을 대적하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책을 읽고 한번 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제가 그때 했던 일을 그대로 따라 하지 마십시오. 당시 저는 충분히 알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공동체 안에 상처가 많은 한 자매가 있었습니다. 그 자매는 자신을 매우 부정적으로 바라보았고, 형제들과의 관계에서도 상처를 많이 받았습니다. 공부를 잘하면서도 스스로를 낮추고 비난하는 말이 많았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고 성급하게 원인을 판단했습니다. 그 자매에게 전화하여, 그것이 귀신 때문이라며 제가 기도해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혼자 가지 않고 후배를 데리고 그 자매에게 갔습니다. 그 자매 역시 저를 매우 신뢰했기 때문에 기도받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기도한 뒤 책에서 읽은 방식대로 악한 영을 불러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제가 귀신의 반응이라고 받아들인 일이 나타났습니다. 말을 하는 모습을 보고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불러내기는 했지만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던 것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방언으로 매우 강하게 기도했습니다. 함께 간 후배도 놀라서 같이 기도했습니다. 잠시 뒤 자매는 무엇인가 나간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옆에 있던 후배가 말을 더듬듯 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그 후배는 그때 방언을 받았습니다. 당시 저는 그 자매에게 나타난 것을 자신을 저주하고 비난하게 만드는 영으로 이해했습니다. 자매는 스스로에게 모욕적인 말을 했고, 다른 사람이 자신을 비하해도 괜찮다고 받아들였습니다. 자신은 성격이 좋아서 그런 말을 들어도 괜찮은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저주의 영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을 저주하는 말들을 대응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 하나는 속이는 영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 자매는 드라마 속 남녀관계를 보면서 백마 탄 왕자 같은 남자를 기대했습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드라마처럼 멋지고 행복한 관계를 만들어 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형제는 그런 기대를 채워 주지 못했습니다. 그 차이 때문에 자매는 상처받고 자신을 비난했습니다. 저는 그 자매에게 드라마 속 모습을 그대로 현실이라고 믿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자매는 그런 기대를 놓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런 삶을 살고 싶어요.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 그 자매가 그렇게 말하는 가운데, 저는 다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나가라고 해도 반응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자매는 갑자기 자신을 찾는 것처럼 말했습니다. “내가 어디 갔지?” 저는 당황했습니다. 제가 읽었던 책에는 이런 상황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 상태가 계속되면 어떻게 하지?’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자매가 자신을 속이고 있던 기대를 놓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것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런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책에서 읽었던 한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사역을 마무리하지 못했을 때 다시 들어가고, 부를 때까지 나오지 말라고 명령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그 내용을 떠올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자매가 다시 정신을 차렸습니다. 저는 크게 놀랐지만, 자매가 평소의 상태로 돌아온 것을 보고 안도했습니다. 그 자매는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에 자신이 어떻게 말하고 행동했는지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일이 공동체에 알려지자 제가 이상한 일을 하고 다닌다는 소문도 났습니다. 그러나 제 안에는 영적인 사역에 대한 궁금증이 계속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신학대학원에 들어가서도 그런 경험을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처음 접한 일들이 너무 신기했고, 열정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귀신을 쫓는 일이나 기도 가운데 있었던 일을 말하면 사람들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피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누군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서는 그런 이야기를 하면 안 됩니다.” 저는 왜 안 되는지 물었습니다. 그분에게도 경험한 일이 있는지 물었지만, 계속 그런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당시 마흔다섯 살 정도에 신학대학원에 들어온 분이 계셨습니다. 저는 그 나이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신학을 공부하러 오셨다면 특별한 경험이 있지 않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계속 여쭈었더니 그분도 놀라운 경험을 하셨다고 했습니다. 깊은 산에 밤에 들어갔는데, 빛이 자신을 인도했다고 하셨습니다. 어두운 산속이 밝아졌고, 주님이 빛 가운데 함께 계시는 것처럼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도 그 이야기를 나눈 뒤에는 여기서 그런 말을 하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분들이 깊은 경험을 하고도 그것을 자유롭게 말하지 못하는 분위기를 느꼈습니다. 은사에 관한 경험을 이야기하면 이단으로 의심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저는 마지막 대학 수련회에서 성령님을 만나고, 이후 여러 일을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성령의 세례나 기름부음에 대해 먼저 경험한 사람을 통해 듣고 배웠습니다. 그전에는 그런 경험을 한 사람이 주변에 많지 않았고, 경험한 사람도 자세히 이야기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 은혜가 있다는 사실을 들어 보지 못했으니 사모하지 않았습니다. 사모하지 않으니 구하지 않았고, 구하지 않으니 계속 경험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은혜를 경험한 뒤에는 이전과 이후가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기도가 달라졌고, 성경을 보는 눈이 달라졌으며, 믿음도 달라졌습니다. 그전에도 사람들은 저를 교회의 기둥이라고 했고, 신앙이 좋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을 경험한 뒤에 돌아보니, 제가 믿음의 실제를 얼마나 모르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저는 성령님을 만났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이야기를 이어 가며, 제가 어떻게 성령 사역을 배우고 성장해 왔는지 나누려고 합니다. 저 역시 책을 통해 성령 사역자들의 간증과 경험을 읽으며 배웠습니다. ‘이런 일이 있구나. 이런 방식으로 역사하시는구나.’ 그 안에서 여러 원리를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가까운 사람이 직접 그런 이야기를 자세히 나누어 준 경우는 많지 않았습니다. 주변에 실제로 경험한 사람이 많지 않았고, 알려 주는 사람도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씩 경험하며 배웠습니다. 그 과정에서 깨지고 부서지기도 했고, 오해받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익숙해졌습니다.
어린 여러분에게도 지금부터 하나님께서 마음에 어떤 감동을 주시는지가 중요합니다. 어떤 소망과 열정을 주시는지 살펴보십시오.
‘나도 성령의 능력을 받고 싶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하나님께서 만들어 가시는 인생을 살고 싶다.’
그런 마음을 지금부터 품으십시오. 저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소망 자체가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연결되어 있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