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 연재 4회
죄를 이기는 것이 은혜입니다.
본문
로마서 6장 1-11절
· 개역개정
설교
김치훈목사 · 2026년 10월 18일 · 새부대교회
죄를 이기는 것이 은혜입니다.
로마서 6장 1-11절
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10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우리는 지난시간에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의롭다 칭함을 받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 나눴 습니다. 이 위대한 진리는 바로 참여신학으로 해석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에 믿음으로 참여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에 참여하였고, 예수님의 부활에 참여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승천과 하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그 놀라우신 일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참여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참여함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게 된다는 진리를 나누었습니다.
이 진리를 깨달음으로 오늘 로마서 6장의 말씀을 훨씬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6장은 은혜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더욱 명확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회퍼의 진단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당시 루터교의 모습에 대해서
"값싼 은혜"라고 불렀습니다.
값싼 은혜란 회개 없는 용서의 설교이며, 제자도 없는 은혜, 십자가 없는 은혜입니다. 그러면서 값싼 은혜는 회개하는 죄인이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진정한 은혜이죠. – 죄가 의롭다 함을 받는 것입니다. 죄가 의롭다함을 받는 것. 죄인이 아니라. 곧 죄를 정당화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이 값싼 은혜입니다.
한국교회 문화속에 이런 값싼 은혜의 모습들이 있습니다.
은혜를 값싸게 만드는 것은
죄를 지어놓고도 자신의 죄를 주님이 허용해준다. 넘어가준다. 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자신의 죄를 정당화하는데까지 갑니다. 그런 죄가 정당함을 받는 것을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죄를 지어놓고도 회개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 죄를 계속 짓고 있는데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죄를 짓고 안걸리고, 큰 피해를 보지 않으면 그것도 하나님께서 이 죄를 허용해주는구나, 이정도는 감춰주시는 것이 은혜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회문화적으로 내로남불이라고 하죠. 자신이 해야할 마땅한 의무는 하지 않으면서 자기 권리만을 주장하는 악한 태도죠. 영적으로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을 은혜라고 여기는 태도들이 있습니다. 의무는 행하지 않고 권리만 주장하고 의무를 행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넘어가주시는 것을 ‘은혜’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은혜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기만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속지 않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값없이 의롭다하신 은혜를 주셨지 값싼 은혜를 주신 것이 아닙니다. 값없이 주신 것은 너무 값비싸서 우리가 도저히 그 값을 지불할 수 없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런 은혜를 값싸게 만들어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훼손하는 태도들이 있습니다.
당시 본문에서도, 이렇게 복음을 보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로마서 5장 20절
20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로마서 6장 바로 전문맥에서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 라고 하니까 그럼 은혜를 넘치게 하려면 죄를 더 지으면 되겠구나, 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고, 바울사도를 향해서 죄를 더 지으라고 명령하고 있다 라고 호도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의 의도는 율법을 알게 되면, 자신의 죄됨을 더 깊이 알게 되고 깨닫게 됩니다. 그러니 자신을 용서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크게 다가오는 것이죠. 율법으로 인해서 죄의 죄됨을 더욱 크게 깨닫게 되기 때문에 은혜가 크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은혜를 더 받으려면 죄를 더 지어라 이런 의미가 당연히 아닌 것이죠.
바울 사도도,
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그럴 수 없다. 라고 선언합니다.
1. 죄에 대하여 죽었기 때문이다.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그의 죽으심과 함께 세례를 받았습니다. 곧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입니다. 죽었다는 의미는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의미합니다. 노력해서 죽어가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미 죽었다는 것입니다. 단회적으로 죽은 사건을 말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계속 죽여가야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가 과거에 주와 함께 이미 죽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죽으심과 합하여 우리도 죽은 것입니다.
2. 부활과도 연합하였습니다.
죽으심에 연합한 것같이 그의 부활에도 연합한 자가 되었습니다.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연합한"(σύμφυτοι, 쉼퓌토이)
어원은 함께 “심겨 자라다”입니다. 접붙임, 한 뿌리에서 자라는 이미지입니다.
같은 뿌리에서 나온 가지는 뿌리의 죽음도, 생명도 함께 받습니다.
가지가 뿌리와 연합했는데 생명만 쏙 빼고 받을 수는 없습니다.
죽으심과 연합했으니 부활도 자연스럽게 연합이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 접붙임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신 것은 새생명가운데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니까 죄짓는 인생이 아니고, 죄의 지배속에 사는 인생아니고, 죄로 인해서 저주와 심판아래 갇혀있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 영생을 누리는 삶을 살게 하셨다라는 것입니다.
죄를 지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새 생명가운데 행하게 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참여한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부활한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우리의 영적신분이 이미 변화되었다는 것입니다.
믿기 전에는
죄의 종이었습니다. 죄의 지배아래 있었습니다. 죄를 짓고싶지 않아도 죄의 포로가 된 듯 죄에 끌려 다녔습니다. 그러니 인생이 계속 죄의 연속입니다. 죄를 안 지을 수가 없었습니다. 죄의 종이니까요. 죄를 지으면 저주가 따라옵니다. 허망한 인생이 됩니다. 헛된 인생이 됩니다. 수고한 것을 다 빼앗기게 됩니다. 저주만 오는게 아니라 심판도 옵니다.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생에는 저주와 심판이 예비된 인생을 살고, 그 그늘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수고하고 무겁고 힘겨운 인생이 되겠습니까? 가장 핵심은 그 죄의 종으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믿게 되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죽으심 뿐만 아니라 부활에도 참여하게 됩니다. 죽으심과 부활에 참여하게 되면서 죄에 대하여 죽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은 바로 죄의 지배에서 벗어난다는 것입니다. 죄의 종이었는데 그 신분에서 벗어나서 이제는 의의 종이 된다는 것입니다. 죄의 종노릇하는데서 해방되어서 의의 종이 된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신분이 완전히 변화된 것입니다.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죄에 대하여 죽음으로 인해서 죄에게 종노릇하는데서 해방된 것입니다. 죄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리고 의롭다하심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의의 종입니다. 죄의 종이 아닙니다.
죄에서 벗어났습니다. 죄에게 끌려다니는 존재가 아닌 것입니다.
죄를 다스릴 수 있고 죄를 지배할 수 있으며 죄를 이길 수 있는 영적신분이 되었습니다. 죄를 짓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저주가 끊어지고 심판이 제거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영적신분의 변화를 믿어야 합니다.
10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여길지어다” 이 동사가 매우 중요합니다.
‘여길지어다’ 라는 동사는
λογίζομαι(로기조마이)의 어원과 성경 용례
1. 어원
λόγος(로고스) ← λέγω(레고)
λέγω의 원래 뜻은 "말하다"가 아니라 "모으다, 골라 모으다, 차례대로 늘어놓다"입니다. 모아서 세다 → 따져 보다 → 말하다로 의미가 넓어졌습니다.
여기서 파생된 λογίζομαι는 "세어 보다, 계산하다, 따져서 결론을 내리다"입니다. (λόγος의 "이성, 논리, 셈"과 같은 뿌리입니다.)
단순 수 세기(ἀριθμέω)와 달리, 따져 본 뒤 결론을 내리는 이성적 판단의 뉘앙스가 있습니다.
2. 의미 세 갈래
의미ԀĀ설명ԀĀ번역
① 계산하다ǴĀ장부에 기입, 셈함ɸĀ계산하다, 헤아리다
② 간주하다/돌리다เĀ어떤 사람의 계정에 올림 (전가)ྐĀ여기다, 돌리다
③ 결론 내리다ঈĀ따져 보고 판단함иĀ생각하다, 확신하다
“회계학” 용어입니다.
‘장부에 맞게 기록하라’
"나는 평생 죄의 지배 아래서 살았어. 이 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야. 이 저주에서 나올 수 없을 거야." 이렇게 생각하십니까?
“로기조마이!” 그 장부를 덮고, 하늘의 장부를 펴십시오.
하늘의 장부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를 다스리던 죄의 권세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깨졌다. 너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죄의 종 노릇에서 풀려났다. 너는 율법 아래가 아니라 은혜 아래 있고, 죄의 주권이 아니라 하나님 의의 다스림 아래 있다.
죄가 너를 다스릴 수 없다!!! 너는 죄의 종이 아니다. 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늘장부에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더 이상 죄가 다스릴 수 없다. 죄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죄에서 벗어나 의의 종이 되었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장부를 따라서 너의 장부를 “로기조마이” 이성적으로 일일이 따지면서 다시 기록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의 말씀이 네게 믿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질 것입니다. 그 분의 능력과 신실하심을 믿게 됩니다. 약속을 믿게 됩니다. 의의 종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믿음이 우리를 인도하고 이끌어가며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거룩함의 열매와 영생의 소망이 믿어질 것입니다.
왜 입니까? 네가 믿음으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네가 이미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 산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장부에 맞게 자신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지금의 내 모습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참여한 모습으로 자신을 인정하십시오.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참여한 자신을 인정하십시오.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한 자신을 인정하세요.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은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닙니다. 죄가 나를 다스릴 수 없습니다. 죄가 나를 지배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의가 나를 다스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집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나를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귀한 진리를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하늘신분이 변화된 자신을 계속해서 인정하고 주장하고 하늘의 신분으로 자신을 다자인해야 합니다. 자신을 새롭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신분으로 죄와 싸워야합니다.
죄가 나를 다스릴 수 없지만, 그래도 죄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죄와 계속 싸워야 합니다. 그 죄와 어떻게 싸울 것인가? 전에는 죄와 싸우지도 못하고 죄에게 끌려다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죄가 나를 끌고 다닐 수 없어요, 우리가 죄의 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죄의 지배에서 벗어나 상태이기 때문에 죄와 싸울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진리를 계속 주장하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늘 이 진리를 주장하십시오.
“죄가 나를 다스릴 수없다. 나는 죄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의 통치를 받는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다. 주님의 말씀이 나를 인도하신다. ”
주의 영이 나를 인도하신다.
하나님의 영이 나를 다스리네.. 찬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