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 연재 5회
이제!! 나는 하나님의 것이다
본문
로마서 6장 12-23절
· 개역개정
설교
김치훈 목사 · 2026년 10월 25일 · 새부대교회
이제! 나는 하나님의 것이다.
로마서 6장 12-23절
핵심주장
12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구약은 히브리어로 쓰여있고, 신약은 헬라어로 쓰여있습니다.
이렇게 생겼습니다.
헬라어에서 라틴어가 나오고 라틴어에서 독일어, 영어 등이 나와서, 영어랑 비슷해보입니다.
이 두 구절을 잘 해석하려면, 헬라어의 문법을 조금 알 필요가 있습니다. 명령하고 있습니다. 순종하지 말고, 드리라.
부정명령, ~ 하지 말라.
긍정명령, ~ 하라.
죄가 너희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서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라.
이 구절에서는 죄를 왕같이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죄가 너를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배하지 못하게 해라. 죄가 나의 왕노릇하지 못하게 해라 라는 것입니다.
이제 어떻게 하라
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너희를 죄에게 내주지 말고
너희를 하나님께 드리라
라고 되어있습니다.
우리가 한국말로 번역한 것을 볼 때는 의미가 바로 이해가 됩니다. 문법에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헬라어는 좀 더 체계적이고 세밀합니다.
명령법에도 시제가 있습니다.
내주다. 드리다는 실상 같은 단어입니다.
παρίστημι(파리스테미, 내놓다, 드리다) 를 두 번 쓰는데 시제가 다르다.
부정 명령 → 현재형: 죄에게 내주는 것은 반복되는 습관이므로 "그만두라"
긍정 명령 → 부정과거형: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결정적 행위이므로 "단번에 드리라“
현재형은 진행과 반복의 의미를 갖는다고 말씀을 드렸죠. 그러면, 현재형으로 된 명령이니까, 계속해서 그것을 해라. 라고 되겠죠. 부정명령이면 계속해서 그것을 하지 말라 라는 의미가 됩니다.
곧 죄에 내어주는 것을 계속 하지 말라. 라는 뜻입니다.
죄를 왕으로 세워주면서 죄에게 종노릇하는 것을 앞으로 계속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곧, 이 말씀에는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은 사람도 앞으로 죄를 왕으로 세워서 죄에게 종노릇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동시에 이제는 죄를 왕으로 세우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긍정명령, 하나님께 드리라 라고 했을 때는 부정과거형 시제를 사용했습니다.
현재형이 아니라 부정과거형입니다.
여기서 부정과거형이라고 했을 때는 더럽다. 등의 의미가 아니고, 또 뭔가를 거부한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반대한다는 의미도 아니고, 여기서 부정은 정해지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영어에서 부정사와 같은 의미입니다. 아직 정확하게 역할이 정해지지 않았을 때 부정사라고 합니다. 부정과거도 그렇습니다.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진행인지, 완료인지, 반복인지 규정되지 않은 시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명령을 하는데 과거형이 될 수 있나요?
그럴 수 없죠?
명령은 모두 현재형이에요. 지금부터 드려라 이뜻입니다.
그런데 부정과거형으로 쓰면 어떤 의미가 되는것이냐?
영어나 한국어에는 이런 개념이 없어서, 번역이 똑같이 됩니다.
그런데 헬라어에는
현재형으로 된 명령
부정과거형으로 된 명령이 있습니다.
부정과거형이라고 해서 시제가 과거인 것이 아니라,
어떤 모양이냐, 상을 표현할 때 쓰입니다.
그러니까 모두 지금부터 드려라 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현재형은 계속 드려랴 라는 의미가 되고
부정과거는 한번에 전체로 라는 의미가 됩니다.
그러니까, 죄에게 드리지 말라 했을 대는 현재형으로 쓰였습니다. 계속해서 드리지 말라 라는 의미가 되고
하나님께 드리라 했을 때는 부정과거형을 썼습니다. 그러니까, 계속해서 드리라는 것이 아니라, 딱 드려버려라. 전체적으로 딱 드려라. 라는 의미가 됩니다. 여기서는 숫자로 단번에 라는 의미는 없습니다. 한번만 드리면 된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온전히 드리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네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말씀도, 현재형으로 사용해서, 지속적으로 꾸준히 네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라 라는 의미를 해도 나쁘지 않았을 것같은데, 왜 하나님께 드리라는 이 명령에서는 부정과거형을 사용했을까? 여기에 주님의 중요한 의도가 있습니다.
그것은 현재형으로 사용하면, 지속적으로 계속해서 네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의미가 되지만, 본문처럼 부정과거형을 사용하면, 온전히 드리라, 전체적으로 드리라 라는 의미로 부각됩니다. 이렇게 사용한 바울사도의 의도는 무엇이겠습니까?
곧 네 인생의 주인을 바꿔야 한다는 결정타를 날린 것입니다.
어쩔 때는 죄의 지배를 받고, 어떤 때는 은혜를 누리고 왔다갔다 하지말고, 완전히 주님의 은혜의 지배를 받는 인생이 되고, 온전히 하나님만을 섬기는 인생, 예수님이 왕이신 삶을 살아라 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 수 있는 이유는
14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15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죄가 사하졌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가 더 이상 주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일제치하 속에 있던 조선인들에게 일본이 망했다. 일본은 더 이상 우리의 주인이 아니다. 더 이상 일본주인에게 굴종할 필요없다. 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법적인 신분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죄가 너희의 주인이 아니다. 더 이상 죄의 지배를 받을 필요가 없다.
그래서
1번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법적인 신분, 영적인 신분, 하늘의 장부가 바뀌었다는 것을.
2번 이제는 왕되신 주님께 자신을 드려야 합니다.
어떻게 완전히, 전체적으로 온전히 드려야 합니다.
어떻게 온전히 드린다는 것입니까?
바로 순종입니다. 순종!!!
순종의 원리
순종의 중요한 원리가 바로 16절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순종은 내가 누구의 통치아래 있는가?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죄의 종 -> 사망
순종의 종 -> 의
곧, 순종하는 삶이 곧 은혜의 통치를 받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은혜아래 있다고 해서 순종을 안해도 그냥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해준다는 것은 성경에 없습니다. 그런 말씀과 원리는 성경적인 것이 안입니다. 오히려 은혜의 통치아래 있으니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죄가 나의 왕이 되어서 죄가 나를 다스리는 상태라 하더라도
내가 죄의 말에 순종을 해야 저주가 오고 심판이 옵니다.
저주와 심판이 나에게 와있는데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이것들이 나를 괴롭게 한다? 그런 삶은 없습니다. 내가 죄의 명령을 따랐고, 죄를 왕으로 삼았고, 죄의 충동질에 내가 휩쓸려서 순종했기 때문에 죄가 저주와 심판을 불러온 것입니다.
은혜의 통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혜의 지배아래 있다는 것은
바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죄 아래 산다는 것은 주님의 말씀에 불순종한다는 것이구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은혜가 나를 의로 인도합니다. 할렐루야.
17-18절에 이 원리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18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본래는 죄의 종이었다.
진리의 말씀을 마음으로 믿고 순종했다.
죄로부터 해방되었고, 의의 종이 되었다.
이제는
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의에게 종으로 내어주라. 그래서 거룩함에 이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어떻게 우리는 거룩함에 이를 수 있는가?
그 원리가 전에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서 불법에 이른 것같이..
그런 원리로 똑같이 이제는 의에게 종으로 너희를 내어주라는 것입니다.
잘 생각해보세요.
어떻게 죄에 빠졌습니까? 욕심이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내 안에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에 동의했고, 세상사람들이 어떤 삶을 사는 것이 부러웠고, 어떤 차가 부러웠고 어떤 집이 부러웠습니다. 세상에 속한 것을 보고 부러워했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어떤 충동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이 부정이든 불법이라고 해도 그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것에 동의했습니다.
계속 충동이 일어납니다. 비슷한 욕심을 가진 사람들이 옆에서 계속 충동질합니다. 계속 마음에 괜찮다고 이제 얻을 수 있다고 충동질을 합니다. 그러면서 그 말에 휩쓸려가면서 죄의 유혹을 따라 순종한 것입니다. 그리고 불편해도 참았습니다. 그 세상것을 얻을 수 있다면, 그러다가 못얻고, 오히려 돈만 잃고 마음도 상하고 관계도 깨진 것이죠. 그러다가 생명도 위태로워지고 지옥도 가게 생긴 것입니다.
이와같이. 의에게 종노릇하라는 것입니다.
내 안에 하나님의 나라를 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소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의와 거룩하고 평안과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와 높은 영적인 성숙을 사모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주님의 임재와 기름부음과 하나님의 약속과 유업을 갈망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런 공동체를 만나게 하십니다. 그 길을 먼저 한 믿음의 동역자들을 만나게 하십니다. 어려움을 먼저 이겨낸 사람들, 함께 그 길을 가는 공동체를 만나게 하십니다. 어려움이 있어도 그들과 함께 믿음으로 함께 이겨냅니다. 그러다가 계속적인 성령의 감동이 있습니다. 성령께서 생각을 주십니다. 마음을 새롭게 해주십니다. 그렇게 그 마음을 따라사 휩쓸려가듯이 주님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20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21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죄의 지배를 받을 때는 하나님의 감동과 생각은 우습게 생각했습니다. 듣지 않았습니다. 기도하는 이들, 믿음의 권면을 해주는 말들을 듣지 않고 버렸습니다. 신경을 쓰지 않았어요. 그렇게 의에 대해서 자유로웠습니다. 전혀 주님의 심판이든 복이든 나와는 상관없다고 여기면서 자유롭게 산 것이죠. 그래서 심판이 왔고 마지막은 사망이 온 것입니다.
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이제는 반대입니다. 죄의 지배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내 마음을 새롭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집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믿어집니다. 하나님의 감동이 밀려옵니다. 그 말씀에 따라 살고 싶습니다. 그렇게 순종하게 되고,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습니다. 그리고 그 거룩함은 우리를 영생으로 인도합니다.
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제게 늘 생각나는 유명한 예화가 있습니다.
클리브랜드 대통령